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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드리는 예배의 본질 - 장재형목사

 

1. 음악사역자의 정체성과 레위 지파의 소명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음악사역을 맡길 때에는 단순히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하는 기능적 측면 이상을 요구하신다. 성경은 아삽이 레위 지파 출신임을 분명히 밝힌다(대상 6장, 25장).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예배와 제사를 전담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지파다. 그들은 제사를 준비하고, 성막과 성전에서 여러 예배의식과 찬송을 이끌었다. 그중 아삽은 헤만, 여두둔과 함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가장 뛰어난 음악사역자로 손꼽혔는데(대상 25:1), 이는 음악사역 자체가 예배의 주요 부분으로서 레위 지파에게 맡겨졌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이 지점에서 장재형 목사는 음악사역자가 갖춰야 할 신분에 대해 특별히 주목한다. 성경적 관점에서 음악사역자의 신분은 '레위인'과도 같은 정체성을 지닐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어떤 지파 출신'이라는 혈통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 교회나 선교 조직에서 레위 지파처럼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사는 일꾼, 곧 목회적 소명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사역자들이 서야 한다는 영적·신학적 원리를 의미한다. 성경은 레위 지파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전인격적 헌신'을 요구했다고 기록한다. 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제사와 예배, 봉사와 가르침 등을 담당했다는 점은 곧 음악사역 역시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전인적 헌신의 결과로 나타나야 함을 보여준다.

특히 역대상 6장 31-48절, 그리고 25장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레위 지파의 명단과 직무는,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한다. 다윗이 언약궤를 찾아 예루살렘으로 옮겼을 때(대상 6:32), 그 앞에서 찬송할 사람들을 특별히 선발하여 사역을 맡겼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아삽'이다. 그가 헤만의 형제(대상 6:39)로 소개되며, 레위 지파 중에서도 음악을 전담하는 핵심 일꾼으로 부름받았음을 알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성경의 사례를 근거로, 현대 교회와 사역 현장에서 음악사역자가 갖춰야 할 '목회적 영성'과 '헌신'을 강조한다. 음악사역자라 할지라도, 그 본질은 목회자적 소명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음악사역이 '예배 분위기를 돋우는 일', 혹은 '교회 안에서 음악적으로 재능 있는 사람이 하는 봉사' 정도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음악사역을 레위 지파가 맡았다는 사실을 통해, 이들의 사역이 곧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는 백성들에게 영적 감동과 진리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고귀한 직무였음을 밝힌다.

특히 대하(역대하) 서 역시 이스라엘 역사에서 레위 지파의 역할이 계속해서 강조되는데, 이는 우리의 예배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한 근거가 된다. 예배는 '아카데믹'하고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거쳐 준비되어야 하며, 음악사역도 마찬가지로 그 정신과 미션을 제대로 알고 행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가 캔자스시티에 주빌리대학을 세우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음악사역의 이론(Theory)과 기술(Skill)은 분리될 수 없으며, 특히 이론이 먼저 정립된 뒤 기술이 뒤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왜 우리가 찬송해야 하는가? 왜 음악이 예배의 중요한 요소인가?'라는 신학적·학문적 해답이 먼저 확립될 때, 비로소 음악사역이 생명력 있는 예배 현장을 이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레위 지파의 정체성을 계승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분별과 헌신'을 의미한다. 이들은 언약궤가 안치된 곳, 즉 성막과 성전에서 늘 하나님을 찬송했고, 그 찬송은 제사와 함께 백성의 언약 관계를 확인하는 통로가 되었다. 장재형 목사가 말하는 바, 음악사역의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예배 공동체를 세우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케 하는 핵심 역할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아삽이라는 인물은 매우 중요한 모범을 제공한다. 그의 이름 뜻인 '모으는 자'가 상징하듯, 음악사역자는 백성을 모으고,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여 그들을 예배로 인도하는 자다. 그리고 아삽은 시편 50편에서 이 사명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오늘날 교회 현장에서도, 음악사역자들은 단순히 노래를 잘하고 악기를 잘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교회가 가야 할 신학적 방향과 예배적 비전을 명확히 알고, 이를 위해 자기를 구별하여 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가 주빌리대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 역시, 레위 지파가 그러했듯, 음악사역자들이 영적 기초와 신학적 기반 위에 실천적 예배 기술을 더하여 사역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예배 공동체를 형성하고, 음악사역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오도록 '모으는' 사역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려는 것이다.

아삽과 헤만, 여두둔이라는 세 인물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예배 음악을 담당한 것처럼(대상 25장), 현대 교회에도 다양한 음악사역자들이 일어나 음악으로 봉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조직과 목적은 여전히 하나다. 즉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이끄는 일이다. 이러한 소명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바로 '학교'의 역할이며,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비전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본다. 레위 지파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배 음악을 단지 예능 활동으로 오해하거나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소비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이다. 음률과 화성을 다루되, 그 속에 들어가야 할 영적 진리와 감동은 성경 말씀과 예배학적 토대 위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레위 지파적 정체성은 음악사역자 개인의 삶에도 적용된다. 성경에서 레위인들은 각종 제의와 예배 절차를 엄격히 지키고, 자기 자신을 성결하게 하며, 공동체의 거룩을 앞장서서 지켰다. 마찬가지로 음악사역자들도 개인의 삶에서 하나님 앞에 깨어 있어야 하며, 세상의 음악적 가치관이나 오락적 성향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과 예배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가 없으면 레위 지파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말하기 어렵고, 예배 음악이 결코 '향기로운 제사'가 될 수 없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점을 강조함으로써, 음악사역자들이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주빌리대학이 지향하는 아카데믹한 교육 과정은 단순히 음악 스킬을 익히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예배 신학, 교회 역사, 성경 이해, 설교학 등 음악사역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교회학적·목회학적 내용이 함께 포함된다. 이는 곧 레위 지파가 예배 자체를 담당하는 사역자들이었듯이, 현대의 음악사역자들도 예배 전반을 이해하고 능숙히 섬길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전문적인 음악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성경과 신학, 예배학, 교회 조직과 행정, 리더십 등의 과목들을 통해 음악사역자들이 더욱 견고해질 때, 진정으로 교회를 세우는 예배 음악이 가능해진다.

결국 음악사역자의 정체성은 단순히 '노래 잘하는 사람' 또는 '악기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 레위 지파처럼 하나님 앞에 구별되어 헌신된,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하는 자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장재형 목사가 말하는 음악사역자 양성의 핵심이다. 그는 현대 교회의 여러 사역 영역 중에서도 음악사역이 차지하는 영적 비중이 매우 큰 만큼, 이를 위한 올바른 교육과 비전 제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삽을 통해 보듯, 하나님께서는 그를 비롯한 음악사역자들에게 시편 50편과 같이 깊은 영적 통찰력을 주시어, 온 백성을 하나님의 예배로 이끄는 사명을 맡기신다. 이 점에서 아삽은 예배 음악의 정신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표본이 된다.

2. 시편 50편이 강조하는 예배의 본질시편 50편은 아삽의 시로, 예배의 본질과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시편 50:1)는 선언은 하나님의 통치가 전 우주적이라는 사실을 노래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온 인류를 예배 공동체로 초청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삽의 이름 자체가 '모으는 자'라는 뜻이며, 이 이름에 걸맞게 아삽은 이 시편에서 '모으심의 하나님'을 노래한다.

장재형 목사는 시편 50편을 주해할 때, 이 말씀이 예배의 본질을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시편 50:5에서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은 언약과 제사를 연결한다. 언약 백성으로서의 표지는 바로 '제사'이며, 이는 곧 오늘날의 언어로 '예배'를 의미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재확인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부여받는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자리'요, '하나님과 언약 맺은 관계를 갱신하는 시간'이 된다.

음악사역자의 역할은 이러한 예배의 본질을 돕는 핵심적인 임무다. 시편 50:8에서 하나님은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예배에 드려지는 제물은 하나님 앞에 늘 기억되는 중요한 행위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오늘날 예배로 확장하여 해석한다. 찬양대가 드리는 찬송, 성가대의 헌신, 그리고 온 회중이 올리는 음악적 경배가 곧 우리의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재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양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라는 점을, 시편 69:30-31에 언급된 '찬양이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확증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장재형 목사는 예배가 형식적 제사에 그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편 50편 중반부(시편 50:14-15)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는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게 원하시는 예배가 단순히 의식적 행위가 아닌, 감사의 마음에서 비롯된 자발적 예배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약속이 함께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가식적인 의례가 아니라, 진정한 감사와 찬양의 태도다.

아삽이 "하나님은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시편 50:3)라고 노래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임재하실 때 드러나는 강력한 하나님의 거룩과 주권을 상기시킨다. 예배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며, 우리가 '흔히 하는 주일 행사'로 전락시키면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장재형 목사는 예배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그 무한히 거룩하고 전능하신 분 앞에 경외심과 감사를 동시에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음악사역은 이 경외와 감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이며,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 교회가 만나는 지점에서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가 깊은 영적 경험을 하도록 안내하는 사역이 된다.

시편 50편 말미(시편 50:16-23)에서 악인과 불의한 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장면은, 예배하는 이들의 삶이 곧 예배의 열매임을 보여준다.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시편 50:16)라는 구절은, 입술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교훈을 미워하고(시편 50:17), 도둑과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는 이들(시편 50:18)의 위선을 지적한다. 예배는 찬양, 제사, 희생 등으로 표현되지만, 이를 드리는 사람의 삶이 동반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해, 음악사역이 결코 예배의 전부가 아님을 지적한다. 음악사역자는 하나님 앞에서 찬양을 올리는 자로서, 본인이 노래하는 메시지를 실제 삶에서도 구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예배의 찬양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예배 시간만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정작 개인의 삶에는 감사와 경외가 사라져 있다면, 시편 50편에서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그 '악인'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장재형 목사는 예배가 삶 전체를 아우르는 '산 제사'(롬 12:1-2)가 되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한다.

결국 시편 50편은 예배가 단순히 제물이나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삶의 전반에서 나타나는 감사와 경외, 언약의 깊은 재확인이라는 사실을 노래한다. 음악사역자는 이 예배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깨닫고, 회중이 함께 그 길을 걷도록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맡는다. 아삽이 쓴 시편들이 그토록 깊은 영성과 통찰을 담고 있는 것도, 그가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제사장적 직무를 수행하는 예배자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음악사역자는 이러한 아삽의 모범을 뒤따르며, 예배의 심장부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불러 모으는 자들로 서야 한다고 장재형 목사는 가르친다.

특히 캔자스시티 주빌리대학에서 음악사역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바로 이 예배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아삽이 그랬듯, 기도와 말씀, 그리고 공동체적 훈련을 통해 깊어진 영성을 가진 음악사역자를 양성하려는 것이다. 단순한 테크닉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예배 신학과 교회사의 흐름, 성경에 기록된 예배 패턴,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음악적 재능을 나누는 방법들을 함께 배우는 장을 제공한다. 이는 곧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고, 시편 50편이 말하듯 진정한 감사와 경외심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교회 공동체 안에 세우려는 데 목적이 있다.

장재형 목사가 늘 강조하는 부분은, 이 예배가 단순히 교회 내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 음성에 대한 응답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배를 통해 언약 백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다시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야 한다. 시편 50편에서 "세상을 부르셨도다"(시편 50:1)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 음악사역을 통해 교회 안팎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찬송으로 하나님을 증언하며,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인도하는 일은 시편 50편이 제시하는 예배의 광대한 스펙트럼에 부합한다.

이처럼 예배의 본질을 시편 50편에서 발견하고, 음악사역자가 그 핵심에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은, 장재형 목사의 사역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신학적·영적 지향점이다. 레위 지파의 정체성을 잇고, 아삽의 시와 같이 깊이 있는 예배 신학을 갖추며, 시편 50편에서 요구하는 감사와 진정성, 의와 공의를 삶에 실천하는 교회로 자라나는 것. 이것이 바로 캔자스시티 주빌리대학과 주빌리월드가 비전으로 삼고 있는 예배 사역의 정수다.

3.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는 믿음시편 50편 14-15절은 우리에게 예배와 감사, 그리고 환난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연결시켜 준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는 말씀은, 예배가 단지 평안할 때만 드리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 위기와 환난의 순간에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배하고 감사의 마음을 갖추는 자는, 환난의 날에 그분을 부르며 건짐을 받는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장재형 목사는 이 말씀을 주목하면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부르는 통로'임을 강조한다. 예배는 단순히 사람들끼리 모여서 노래하고 교제하는 행사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 땅 가운데 초청하는 강력한 도구다. 우리 말로 '부르다'라고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우리의 상황을 아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예배 안에서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만나주시고, 환난 날에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는 약속을 시편 50편이 증거한다.

현대 사회와 교회의 상황은 적지 않은 혼돈과 위기를 겪고 있다. 질병과 자연재해, 경제적 불안, 도덕적·영적 혼란 등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교회로서도 대면 예배에 제약이 따르는 시대적 도전 가운데서,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더 강력하게 제기된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때야말로 예배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고, 시편 50편이 말하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태도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배를 통해 회중은 비로소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현실의 문제보다 더 크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호소하며, 그분이 베푸시는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

시편 50편의 강조점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바로 언약 백성의 신분을 확증한다는 것이다.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시편 50:5)이라는 표현이 이를 대변한다. 언약 백성에게 예배는 삶과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도 예배 안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곧 '예배와 구원'의 긴밀한 연결을 의미한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보호와 치유를 받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시편 50편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는 말씀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시편 기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그 핵심으로 제시한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에 대해 늘 감사와 찬양으로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다. 음악사역자는 이 감사와 찬양의 영역에서 회중을 이끌어 가는 특별한 임무를 맡았다. 예배 중에 선포되는 찬양은, 회중이 감사와 경배의 감정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감사 예배, 회개의 예배, 기쁨의 예배 등 예배의 다양한 형태가 있겠지만, 그 모두가 '감사'라는 태도로 귀결될 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뻐 받으신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의 예배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라고 권면한다. 시편 50편은, 예배가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행위로 전락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그것을 책망하시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내가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시편 50:8)라고 하셨지만, 동시에 예배를 드리는 이의 삶이 하나님을 저버리거나 그분의 교훈을 무시하면(시편 50:16-17) 그 예배는 의의가 없음을 지적하신다. 즉, 예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며, 우리의 내면과 행동 전반을 바꾸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가 세우고자 하는 주빌리대학과 주빌리월드는 이 예배의 본질을 삶에 적용하고, 음악사역자를 비롯한 예배 사역자들을 제대로 세우기 위한 비전을 구현하는 단체다. 특히 음악사역은, 성경적 원리를 배운 뒤에 기술을 익히는 순서를 따라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시편 50편이 말하는 '마음과 태도의 중요성'을 반영한다. 먼저 감사와 경외심, 올바른 예배 신학을 갖춘 뒤에, 이를 찬송과 연주, 작곡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레위 지파의 예배 조직 원리와도 통한다. 다윗 시대에 아삽과 헤만, 여두둔,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이 '신령한 노래'를 드렸던 것(대상 25:1-7)은, 그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선 제사장적 태도를 지닌 자들이었기에 가능했다.

현대 교회 현장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도전과 혼란 속에서도, 예배가 회복될 때 교회 공동체는 다시금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시편 50편이 보여주는 것처럼,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고 구원을 경험한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이고 막연한 위안이 아니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이 말씀에 기초하여 예배를 준비하고 드릴 때, 실제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점을 수차례 간증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감사와 찬양,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경외심이다. 이를 통해 예배의 자리에 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새롭게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예배와 감사의 영성은 개인의 삶을 바꾸고, 교회의 분위기를 바꾸며, 나아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까지 변화시킨다. 주일성수나 예배 참석률 등의 통계적 지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가 진정한 핵심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위해 각 교회와 공동체가 예배에 대한 신학적 성찰, 영적 준비, 음악사역의 바른 이해를 갖출 것을 요청한다. 캔자스시티 주빌리대학이 설립된 것 또한, 이러한 필요성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응답이라 볼 수 있다. 더 많은 음악사역자들이 아삽과 같은 영적 감수성, 헌신, 그리고 신학적 기반을 갖추어 세워지는 것이 시급한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편 50편은, 우리에게 '언약 백성의 예배'가 가진 심판적·책망적 기능도 상기시킨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의를 떠난 이들에게, 예배는 경고와 회개의 외침을 던지는 장이 된다. 장재형 목사는 진정한 예배 속에서 회개와 결단이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 왜냐하면 예배는 본질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불의와 죄가 그대로 방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편 50편 22절,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라는 말씀은, 예배자에게 경외심을 잃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다. 음악사역자라면 더욱 이 말씀에 민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음악사역은 회중을 대표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하고, 백성에게 전하고, 다시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이 중요한 역할에서, 만약 위선이나 죄악이 묵인된다면, 예배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장재형 목사는 시편 50편이 강조하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기 위해, 먼저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와 정결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준비된 상태에서 드리는 찬양과 경배, 기도가 비로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환난 날에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구원과 회복을 경험하고, 그분의 능력을 세상에 증거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흐름 속에서 장재형 목사의 비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된 예배의 삶으로 돌아가도록 돕고, 특별히 음악사역자를 통해 예배가 풍성해지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주빌리대학은 이 같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플랫폼이며, 주빌리월드는 이 사역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려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아삽이 시편 50편에서 보여준 예배 신학의 핵심은 그대로 현대 교회에 적용된다.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재확인하고, 감사와 찬양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부르며, 그분의 구원과 보호하심을 누릴 수 있다.

결국 시편 50편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하며, 그 감사는 진정성이 담긴 찬양과 예배로 표현되어야 한다. 예배는 우리의 형식이나 의무감을 넘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음악사역자들은 그 예배를 인도하고 풍성케 하는 핵심 인물들이기에, 그들의 영적 상태와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 장재형 목사는 끊임없이 이 사실을 강조하며, 음악사역을 맡은 이들이 아삽과 같은 레위인의 헌신과 비전을 품고 교회를 섬기도록 독려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시편 50:1)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 부르심의 목적은 예배다. 아삽의 이름 그대로, 하나님은 세상을 모으시고, 그들이 진정한 예배자가 되길 원하신다. 예배는 회복과 구원의 현장이며, 동시에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 예배의 근본을 잊지 않고,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예배자'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한 우리가 속한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시편 50편이 예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며, 장재형 목사가 주빌리대학을 비롯한 사역 전반에서 펼치고자 하는 비전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