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때를 분별하는 지혜와 충성된 종의 사명
마태복음 24장은 흔히 '소묵시록'이라고 불리며,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가르침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는 장이다. 특히 24장 마지막 부분(마 24:44-51)과 바로 이어지는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는 공통적으로 '때'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교회사에서 이 본문들은 역사적 종말과 개인적 종말을 모두 아우르는 가르침으로 해석되어 왔으며, 이는 개혁주의 전통 안에서도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다루어져 왔다. 장재형 목사는 이 본문에서 핵심적으로 언급되는 '때'에 대한 의미와 적용을 강조함으로써,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처한 시기와 상황을 바로 깨달아야 함을 역설한다. 또한 그는 이 '때'의 인식이 단지 역사의 종말을 바라보는 안목에만 그치지 않고, 각 사람의 일상과 사역, 그리고 전 세계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실제적인 결단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언한다.
마태복음 24장 전체는 예루살렘 멸망과 세계 종말,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날, 말세의 징조, 끝날에 벌어질 혼란과 환난 등을 말씀하신다. 이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은 "그 때가 언제이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였다. 예수님은 여러 표징을 말씀하신 뒤, '무화과나무의 비유(마 24:32)'를 통해 어떤 징조를 보면 '때'가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신다. 이는 과거 역사의 한 장면만이 아니라, 인간 역사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인간은 늘 자기 시대와 상황을 분석하고 파악하며 그 속에서 적절한 선택을 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함의하는 '때를 인식하는 지혜'를 강조한다. 특히 그는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이 역사의 큰 흐름을 조망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 시기와 상황을 읽어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팬데믹은 일종의 '시기(date)'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이 팬데믹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를 우리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에서 이 또한 하나의 굴곡점이 된다는 점이다. 신앙인은 그러한 전환점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준비하게 하시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마태복음 24장 44절 말씀,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구절은 재림에 대한 긴박감을 환기시킨다. 이는 단순히 인류 전체의 최종 종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 사람의 삶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들이 있다. 병이나 사고와 같은 돌발적 사건을 통해 맞이하게 되는 '개인적 종말'도 있다. 그러므로 '자다가 깰 때'(롬 13:11)라는 표현처럼, 깨어 있음과 준비됨이 필수적이다.
마태복음 24장 45절 이하에 등장하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비유'는 구체적인 삶의 태도를 요구한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마 24:45)라는 말씀은, 시간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야 함을 가르친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강조되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라는 표현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핵심 소명이라고 설명한다. 교회와 성도들은 단순히 종말의 때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시기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썩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명하셨다(요 6:27). 이는 우리에게 먹을 양식, 즉 실제 생계수단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보다 궁극적이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라는 뜻이다.
개혁주의 신앙고백 안에서는 '때'와 '시기'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 분명하게 선포된다. 하나님은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이시며(계 1:8), 모든 때를 주관하신다. 역사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종말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메시지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부터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예언까지, 하나님은 인간 역사 안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개혁교회의 전통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종말과 관련된 수많은 해석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분별력'을 강조한다. 그는 "역사의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며, 성경은 그 답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추측이나 공포심에 치우치기보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충실히 임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때와 시기'를 알라는 권면은 과거 이스라엘 역사나 교회사 전반에서 반복되어 왔다. 언제나 하나님은 특정한 '시기'를 통해 경고하시고, 또 구원을 베푸신다. 노아의 시대에 땅을 뒤덮은 홍수도, 모세 시대에 출애굽을 알리는 기적도, 예레미야 시대에 바벨론 포로 생활도, 모두 그 당시 사람들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고민하도록 만드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들 속에서, 깨어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준비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팬데믹, 경제·정치적 혼란, 그리고 교회 내부의 다양한 도전과 변화도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가 이 때를 알고 있는가? 이 때가 갖는 영적·역사적 의미를 분별하고 있는가?" 장재형 목사는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더욱 깨어 있어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징조들을 통해 우리는 지금이 어느 시점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깨달아야 한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비유는 그러한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즉, 맡겨진 이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 양식은 크게 두 가지 차원을 가진다. 하나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섬김과 사랑의 실천으로 베풀어야 하는 실제적 양식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빵과 물을 주고, 환난 당한 이들을 돌보는 것은 예수님의 분명한 명령이다(마 25장에 이어지는 비유들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라는 말씀으로 강조된다). 다른 하나는 영생에 이르는 말씀이라는 양식이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궁극적인 의미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진리를 전함으로써 영혼을 살릴 양식을 나누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이 되라"는 가르침을 아주 실제적인 신앙적 과제로 제시한다. 그는 교회의 활동이 단지 교리적 가르침이나 개인의 영적 성화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세상에 대한 실제적 영향력과 섬김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 때 각 성도는 자기 직업과 위치에서, 혹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전하는 교훈은 요란한 종말론으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리거나, 반대로 아무런 준비 없이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민한 인식과 분별을 통해, 복음의 가치를 삶으로 증거하는 데 집중하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장재형 목사는 마태복음 24장의 소묵시록이 "이 땅의 역사가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고, 그 종말이 분명히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성도들이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함"을 선언한다고 풀이한다. 그리고 그 깨어 있음은 곧 종말론적 두려움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나타나야 한다. 예수님은 준비되지 않은 종을 향해 매우 강한 경고를 주신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24:50-51)라는 말씀은, 신앙적 위선과 게으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종말이 언젠가 닥쳐오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주인이 오셔서 보실 때에 '충성되고 지혜 있게' 맡은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늘 점검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이 본문은 성도 개인의 삶만을 말하지 않는다. 교회 공동체 전체가 한 마음이 되어, 자신들에게 맡겨진 지역과 시대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듯, "나이아가라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들이 서로 밀어주며 올라가는 것처럼, 교회는 한 몸으로 서로를 섬기고 격려하며 함께 역사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개개인의 힘은 작지만, 서로 연합하여 협력하면 폭포와 같은 시대의 도전조차 거슬러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단지 개교회적인 성과와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결집하여 보다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사랑과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마태복음 24장은 막연한 종말론적 공포를 자아내는 장이 아니라, '때'를 알고 준비하라는 예수님의 촉구로 충만한 장이다. 그 핵심 포인트는 "우리가 이 시대에 깨어서, 각자 맡은 사명을 책임감 있게 감당하며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점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교회가 현실 세계에서 직면하는 모든 변화와 위기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사랑의 실천을 멈추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는 곧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모습으로具(구)현된다는 것이다.
2. 개혁교회 전통
역사의 흐름과 종말에 대한 통찰은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 중요한 주제였고, 특별히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 전통 안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논의되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이 역사를 창조하시고, 또한 그 종말까지 주권적으로 인도하신다는 신앙을 핵심으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때와 시기'는 인간이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성경을 통해 어느 정도 징조를 파악하고 분별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는 인간의 자의적 해석이나 공포 마케팅에 치우치지 않는, 성경 중심적이고 균형 잡힌 종말론을 지향한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 개혁교회의 전통 위에 서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때와 시기가 분명히 있으며, 그 예비된 날(the day)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라고 가르친다. 그에게 있어서 종말론은 결코 비관적 회피나 시대 착오적 두려움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하늘과 땅의 도래, 즉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는 희망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물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겠으나, 거룩과 순결을 추구하며 주님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는 완전한 구원과 기쁨의 날이 될 것이다.
그는 "역사의 종말"은 결코 순수한 공포가 아니라 "완성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관점을 강조하며, 교회가 지금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을 광범위하게 제시한다. 즉,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사회 곳곳에 드러나는 일이야말로 종말이 '해결'이나 '파괴'만을 의미하지 않고 '완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중요한 시기마다 '결정적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정적 사건 뒤에는 언제나 그 시대에 깨어 있던 성도들과 지도자들의 순종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초대교회 박해 시기에 기독교가 땅에 완전히 사라질 것처럼 보였으나,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순교적 헌신을 통해 교회는 더욱 굳건히 확장되었다. 종교개혁 시기도 마찬가지다. 면죄부 판매로 대변되는 중세 교회의 부패와 왜곡이 극심해졌을 때, 루터와 칼뱅, 츠빙글리 등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구원론의 핵심을 되살려내고, 교회를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으로 되돌렸다.
개혁교회는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신뢰하되, 인간의 책임 역시 강조한다. 즉 "하나님이 모든 때를 정하시지만, 그 때가 왔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순종하느냐"는 점이 중요하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 바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행동으로具(구)현된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중요한 역사적·사회적 전환점이 찾아왔을 때, 그 현장에서 복음으로 사람들의 영적·육적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한다.
그가 2013년에 WEA 총회 등 국제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류하며 강조했던 것도 이 점이었다. 세계 복음주의 교회가 연합하여, "멸망하는 자에게는 가리어진 복음을 어떻게 다시 순수하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종교개혁의 핵심 모토였던 "Sola Fide(오직 믿음), Sola Gratia(오직 은혜), Sola Scriptura(오직 성경)"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결국 복음이 가진 '구원론'의 순수성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했다. 또한 그런 순수한 복음이 전 세계적으로 전해지고,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드러나려면, 교회가 한마음으로 연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러한 연합과 섬김의 가치관은 장재형 목사가 목회하는 공동체와 국제적 네트워크에서도 구체적으로 실천되었다. 예를 들어, 터키,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국가에 세워진 선교 본부들은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현지 상황에 맞게 봉사와 구제 사역에도 힘썼다. 그는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그 땅에 들어와서 그 지역의 필요를 파악해야 하며, 사람들의 영육 간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한다. 이것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의 태도다"라고 강조했다.
"어떻게 하면 세계 교회가 하나 되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을 섬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흐름이다. 물론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는 다양한 의견과 노선이 있지만, 장재형 목사는 "진정한 복음주의 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기독교 세계 안에서 협력할 부분이 많다"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때에 올바른 반응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차 확인했다고 간증한다. 대규모 선교지와 센터, 그리고 3,300에이커에 달하는 부지 등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점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힘이나 계산이 아닌 '하나님의 타이밍'이었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 그 땅과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기도와 철야 가운데, 성도들이 "주여, 우리가 이것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겠습니다. 이 땅을 복음과 교육, 구제와 선교의 장으로 삼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종에게 맡기리라"(마 24:47)는 축복의 약속이라고 해석한다. 교회와 성도들이 작은 일에도 충성되고 지혜롭게 섬길 때, 하나님은 더 큰 일들을 맡기신다. 여기에는 물론 더 큰 책임과 헌신이 요구된다. 그런데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교회 전체가 하나 되어 서로 격려하고 협력해야 하며, 국제적으로도 교회들이 연대하여 봉사와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또 한 가지는 "끝날에 임할 현상들에 대한 묵시록적 안목"이다. 마태복음 24장과 요한계시록, 데살로니가전후서 등 성경 여러 본문은 종말에 나타날 재난과 환난,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활동 등을 언급한다. 개혁주의 해석 전통에서는 이 모든 것을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시간표로 나누어 '언제 어떻게' 일어난다고 확정하는 대신, "이 땅에 죄와 악이 계속해서 팽배해져 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하나님이 완전한 구원을 이루실 것"임을 신앙으로 고백한다. 장재형 목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종말에 관한 과도한 음모론이나 신비주의적 열광에서 벗어나, "성경을 충실히 읽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분별하되, 실제적인 대비와 준비를 해 나가는 태도"를 권장한다.
특히 개혁교회 신앙고백 안에는 하나님의 예정 교리가 있다. 이는 모든 사건의 때와 시기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 있다는 확신을 준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책임감 있게 활동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두 가지가 모순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라는 믿음과 '인간이 부름받은 자리에서 순종해야 한다'라는 책임이 서로 보완하는 개념이다.
이를 근거로, 장재형 목사는 "장로교의 신앙고백이자 전통인 예정론"을 교리적 교만이나 방임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예정론은 인간이 교만해질 요소를 제거한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구원과 역사를 완성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준다. 동시에, 하나님이 전부 책임지신다고 해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수없이 많은 대목에서 "열심을 다해 기도하라, 깨어 있으라, 복음을 전하라, 서로 사랑하고 선행을 격려하라"라고 명령한다.
때에 대한 분별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함께 움직인다. 장재형 목사는 그 예로, 노아 시대의 홍수를 종종 언급한다.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을 비웃고, 홍수가 닥쳐올 것이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잎을 통해 노아는 물이 어느 정도 줄었는지, 언제 땅에 내려올 수 있는지를 파악했다(창 8장). 그가 방주에 들어가고 나오는 타이밍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징조에 대한 분별력이 관건이었다. 동시에 그에게는 순종과 실천이 필요했다. 방주를 짓는 일은 엄청난 노동과 시련이 수반되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종말에 관해 말씀하시고, 바로 그곳(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으며, 또한 그곳에서 승천하셨다(행 1:12). 감람산(올리벳)은 분명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이 선포된 곳이자, 결정적 사건이 일어난 장소다. 그러므로 교회가 '올리벳담화(Olivet Discourse)'를 늘 상기하는 것은, 한편으로 종말론적 깨어 있음과 회개, 동시에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장재형 목사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 공동체가 특별히 '올리벳담화'의 뜻을 온전히 붙들고 살아가길 원한다. 이를 위해 교회에 모인 지체들이 개인 경건 생활과 더불어,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회적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실천적 신앙'을 추구하기를 강조한다. 그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따로 떨어져 자기들만의 신앙 세계에 고립되는 것"을 경계한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교회는 세상 가운데 들어가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사랑으로 섬기되 종말론적 소망을 결코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모든 과정에서 '때를 아는 지혜'가 중요하다고 재차 주장한다. 어떤 지역에서 사역의 문이 열릴 때가 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잠시 멈추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며 분별하고, 열렸을 때는 과감히 순종하며, 닫혔을 때는 묵묵히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태도다.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이 현대 교회에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은 '종말의 때가 있으니 준비하라'는 것과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게 사역하라'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두 축으로 삼아 목회와 선교를 전개해 왔다. 한 축은 구원론의 순수성을 지키며, 성도 개개인이 성화의 길을 걸어가도록 돕는 것이고, 다른 한 축은 교회가 복음의 능력으로 지역사회와 세계에 봉사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충성'은 자기 만족을 위한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인이 맡기신 사명을 기쁘게 완수하려는 태도"다. 또한 '지혜'는 세상적 잔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시대를 분별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이 두 요소가 함께 어우러질 때, 교회와 성도들은 비록 세상 속에서 환난을 당할지라도 요동하지 않고 제 길을 갈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종종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 그 때가 온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재림 신앙이자, 교회가 변함없이 지켜야 할 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임하기 전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 즉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복음과 사랑을 공급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나이아가라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듯, 교회는 서로 협력하여 세상의 장벽과 도전을 넘어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도움과 하나님의 돌보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해 합심 기도와 헌신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결단과 실천이 비단 일부 헌신자나 지도자들만의 몫이 되지 않기 위해, 장재형 목사는 성도들에게 강력한 연대와 참여를 요청한다. 그것이 교회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종말을 준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교회는 '개혁된 공동체(ekklesia reformata)'라는 전통 속에서, 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하며, 하나님이 주신 시대적 과업을 발견해야 한다. 개혁교회가 역사를 통해 증언해 온 바처럼,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기초 위에서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순종할 때, 교회는 놀라운 부흥과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마태복음 24장은 역사의 종말과 개인적 종말을 동시에 바라보게 하는 소묵시록적 메시지이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때를 알고 준비하라'고 거듭 당부하신다. 개혁교회 전통 안에서 장재형 목사가 이를 해석하고 적용해 온 방식은, 그저 종말론적 두려움을 조장하기보다, "그 날을 대비해 지금 주어진 현실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게 살아가라"는 실천적 제언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리고 이 사명은 혼자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세계 교회가 함께 이루어 가야 한다. 팬데믹, 경제적 격변, 문화적 변화가 큰 격랑처럼 휘몰아치는 이 시대에, 교회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 여름이 가까운 줄 알듯이', 이 시대의 징조를 보고 깨어 기도하며, 실제적인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의 사역은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선교와 복음주의적 연합을 지향한다. 그는 "우리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준다면, 주인은 우리에게 더 큰 책임과 소유를 맡기실 것"이라는 마태복음 24장의 약속을 신뢰한다. 그리고 이 말씀이 실제로 역사와 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성취되고 있음을 간증한다. 이는 교회가 단순한 종말론적 공포가 아니라, 종말론적 소망을 품고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우리의 사명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주인이 언제 오시든지 그분 앞에서 부끄럼 없이 서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장재형 목사가 설교와 사역 전반에서 강조해 온 메시지이다. 팬데믹으로부터 회복되는 이 시점에, 혹은 또 다른 위기가 도래할 때에도, 교회는 결코 표류하지 않고 역사의 방향을 분별해 나갈 수 있다. 오로지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시기를 믿으며, 그 때가 임하기 전까지 맡겨진 일을 충실히 감당하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로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라면, 주인이 오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으며, 영원한 기쁨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