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밤, 사람들은 단지 하나의 구조물이 붕괴하는 장면만 본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던 두려움, 익숙한 편견, 서로를 낯선 존재로 규정하던 오래된 질서가 함께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사도행전 10장은 바로 그런 장면을 성경 안에서 보여 준다. 눈에 보이는 벽은 아니지만,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세워져 있던 가장 견고한 경계가 성령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가 이 본문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복음은 인간이 만든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정해 놓은 범주보다 훨씬 넓고 깊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10장은 두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계선교의 문을 여시는지를 보여 주는 거대한 전환점이다. 한 사람은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다. 둘은 민족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종교적 배경도 다르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면 결코 한자리에 마주 앉기 어려운 조합이다. 그러나 성령은 바로 그 둘을 동시에 준비시키셨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다. 선교는 언제나 인간의 계획보다 먼저 하나님의 준비로 시작된다.
고넬료는 군인이었으나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와 구제에 힘쓰는 사람이었다. 이 장면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교회 바깥이라 여겨지던 자리에서 한 영혼을 준비하고 계셨다. 인간의 종교적 기준으로는 아직 미완성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손길은 이미 그 사람의 삶을 만지고 계셨던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통해, 우리가 아직 교회 안에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하나님의 역사 밖에 있는 사람처럼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보다 앞서 일하신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고넬료의 순종이다. 그는 환상을 듣고 망설이지 않았다. 이해가 완전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에 응답했기 때문에 움직였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본질을 다시 배우게 된다. 믿음은 모든 것이 정리된 뒤 시작되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순종이다. 성령의 역사는 늘 이런 순종의 문을 통해 현실 속으로 들어온다.
한편 같은 시각, 베드로에게도 전혀 다른 방식의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가 본 보자기 환상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은 단지 음식 규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대인의 전통과 선민의식, धार्मिक 경계와 문화적 배타성이 얼마나 깊이 사람의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한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자기 안의 오래된 틀을 완전히 벗어 버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10장은 바로 그 지점을 정면으로 흔든다.
사람은 흔히 자신이 오래 지켜 온 관습을 진리 자체와 혼동한다. 익숙함은 쉽게 절대화되고, 전통은 어느새 경계선이 된다. 그러나 복음은 늘 질문한다. 정말 지켜야 할 것이 인간의 익숙한 질서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과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는 구원의 문인가. 장재형목사가 이 본문을 통해 오늘의 교회를 향해 던지는 도전도 여기에 있다. 교회가 회개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반대만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편견, 영적 우월감, 조용한 차별의 시선이야말로 복음의 길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일 수 있다.
가이사랴에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교회의 자기 변화다. 베드로는 그 집에서 고넬료의 경배를 받지 않고 "나도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는 복음의 본질을 압축한다. 복음 앞에서는 누구도 더 높지 않고, 누구도 더 깨끗한 자로 설 수 없다. 모두가 은혜로 서는 존재이며, 모두가 긍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성령이 임하신다. 유대인 신자들이 놀란 이유는 분명했다. 자신들이 익숙하게 생각하던 구원의 질서가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완전히 재배열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도행전 10장은 고넬료 한 사람의 회심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베드로와 교회의 회심 이야기다. 세계선교는 먼 나라를 향해 떠나는 것 이전에, 먼저 우리 안의 벽이 무너지는 데서 시작된다. 성령은 지리적 경계만 넘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고정관념과 닫힌 마음과 배타적인 언어를 넘어 역사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단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시선의 변화이며, 마음의 회개이고, 공동체의 확장이다.
오늘의 교회에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향해 마음속으로 "속되다"라고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오래 믿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더 안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가능성을 우리의 좁은 경험 안에 가두고 있지 않은가. 사도행전 10장은 말한다. 하나님은 이미 교회 바깥 어딘가에서 고넬료 같은 사람들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자기 안의 안전함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낯선 자리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일이다. 복음은 언제나 벽을 허물고, 은혜는 언제나 경계를 넘어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교회는 비로소 교회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