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기억은 손을 씻는 몸짓만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밤중에 손을 문지르는 맥베스 부인은, 지나간 잘못이 어떻게 현재를 붙드는지 보여 준다. 장재형목사(미국 Olivet University 설립)의 설교가 비추는 베드로의 밤에도 되돌릴 수 없는 부인의 말이 남아 있다. 그러나 베드로의 회개와 회복을 이끄는 것은 자신을 끝없이 벌주는 마음이 아니라, 실패한 제자를 놓지 않는 십자가의 은혜다.
불빛 아래 드러난 믿음의 균열
요한복음 18장 22–27절은 결박당한 예수님과 불을 쬐는 베드로를 나란히 보여 준다. 주님은 부당한 폭력을 당하시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증언하라고 요구하시며 진리를 지키신다. 같은 밤, 제자는 자신이 누구와 함께했던 사람인지 묻는 말 앞에서 그 관계를 부인한다. 묶여 계신 주님은 진리를 버리지 않으시는데, 불가에 선 제자는 두려움에 붙들린다.
말씀의 흐름은 예수님을 결박한 채 가야바에게 보내는 안나스에게서도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을 읽어 낸다. 진리를 대면하기보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경건을 압도한 것이다. 주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폭력으로 되갚지 않으시고 옳고 그름을 밝히신다. 예수님과 베드로를 가르는 것은 그 밤에 위협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위협 앞에서 무엇을 붙들었는지였다.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가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체포와 죽음의 위협이 가까워지자,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이 그 고백을 밀어냈다. 이 부인은 뜻하지 않은 말실수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알지 못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알고도 두려움 때문에 관계를 부정했다는 데 죄의 무게가 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자리에서 비난이 두려워 침묵하거나, 십자가의 길이 버거워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에도 같은 갈림길이 생긴다. 이것이 장재형 (미국 올리벳대학교 설립 )목사가 베드로의 부인을 오늘의 삶에 비추는 이유다. 말로는 주님을 따르지만 손해와 불편 앞에서는 관계를 숨기고 싶어지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다. 성경 묵상은 옛 제자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지금 내 선택을 살피는 자리로 옮겨 간다.
장담과 순종 사이의 거리는 겟세마네에서 이미 드러났다. 마태복음 26장 40–41절에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베드로는 잠들어 있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결심의 크기보다 기도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태도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믿음은 확신을 과시하기보다, 시험 앞에서 자신을 지켜 주실 분께 마음을 기댄다.
회개의 눈물에 먼저 닿아 있던 사랑
누가복음 22장 61–62절에서 주님은 돌이켜 베드로를 보신다. 그 시선과 마주한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밖으로 나가 통곡한다. 설교는 이 눈빛을 배신을 들추어 파멸시키려는 정죄가 아니라, 배신을 아시면서도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자비로 읽는다. 자신을 감추려던 제자는 그 앞에서 더는 자신의 죄를 외면할 수 없다.
베드로의 눈물이 깊은 까닭은 많이 울었기 때문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을 보았고, 그 말씀을 저버린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망가진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는 후회와 달리, 이 회개는 내가 외면한 분께로 시선을 돌린다. 회개는 실패한 나를 끝없이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그 실패를 아시는 주님께 돌아서는 일이다.
그보다 먼저 베드로를 붙들고 있던 것은 주님의 기도였다. 누가복음 22장 31–32절에서 예수님은 제자의 믿음을 위하여 기도하셨다고 말씀하시며, 돌이킨 뒤에는 형제들을 굳게 하라고 당부하신다. 주님은 흔들릴 제자의 밤뿐 아니라 돌아온 제자가 걸어갈 길도 말씀하고 계셨다. 회복의 첫 움직임은 베드로가 자신을 바로잡기 전에, 이미 그를 위하여 기도하신 주님의 사랑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은혜는 인간이 자신을 충분히 고쳐 놓은 뒤에야 찾아오는 보상이 아니었다.
사탄이 밀 까부르듯 흔들려 했던 제자를, 주님은 형제를 세우는 사람으로 부르신다. 같은 시험의 자리에서 파멸을 꾀하는 의도와 회복을 이루시는 사랑이 맞선다. 복음의 역설은 베드로의 죄가 유익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죄와 실패가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연약함을 아는 사람은 자기 강함을 자랑하는 대신, 은혜를 의지하며 흔들리는 이의 곁에 서게 된다.
십자가의 은혜가 다시 사랑을 묻는 자리
베드로를 다시 세우는 사랑의 깊이는 십자가에서 드러난다. 주님은 제자의 부인을 모르신 채 용납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와 배반을 아시면서도 그 죄의 값을 치르셨다. 그러므로 회복의 근거는 더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제자의 약속에 있지 않다. 실패한 사람을 위하여 고난받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있다.
십자가에 이르는 길에서 제자들은 흩어졌고, 베드로마저 자신을 감추었다. 인간의 눈에는 관계가 끊기고 소망이 닫히는 듯한 장면이다. 그러나 복음의 이야기는 그 버림받음에서 멈추지 않고 부활과 성령의 역사로 나아간다. 죄와 배반이 드러난 바로 그 이야기가 사랑과 회복의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사실, 여기에 복음이 건네는 소망이 있다.
요한복음 21장 15–17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을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물음 앞에서, 세 번의 부인은 세 번의 고백으로 회복된다. 그 반복은 실패한 제자에게 다시 응답할 자리를 내어 주시는 사랑을 드러낸다. 과거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을 지닌 사람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그 고백을 받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입술에, 이제 다른 생명을 돌보는 책임이 맡겨진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회복은 개인의 상처가 아물거나 예전의 자신감을 되찾는 데 머물지 않는다. 주님께 돌아온 사람이 교회를 세우고 형제를 굳게 하는 사명으로 나아갈 때, 은혜는 그의 삶을 통하여 이웃에게 전해진다.
이 지점에서 신앙은 실패를 줄여 가는 도덕적 훈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믿음은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주님과 맺는 살아 있는 관계다. 말씀에 순종하고 깨어 기도하는 삶도 자신이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과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걸음이 된다. 부인의 말이 끊어 놓으려 했던 관계를 사랑의 고백이 다시 잇고, 그 관계 안에서 맡겨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새벽을 기다리는 믿음은 오늘 깨어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한다. 이어 사도행전 4장에서는 안나스와 가야바가 있는 자리에서도 예수님 외에 구원의 이름이 없다고 담대히 증언한다. 한때 제자라는 사실을 숨겼던 사람이, 이제 위협 앞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감추지 않는다. 그 담대함은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로워진 사람에게서 나온다.
베드로의 실패가 복음서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도 같은 빛 아래 놓인다. 설교는 그 기록에서, 흠 없는 지도자보다 죄인을 회복시키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드러내려는 공동체의 고백을 읽는다. 감추고 싶었던 연약함이 오히려 누구의 사랑으로 다시 서게 되었는지를 증언한다. 회개하며 자비를 의지하는 이들이 서로를 세워 갈 때, 공동체는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닭 울기 전’이라는 시간은, 어둠이 길어질수록 포기하고 싶어지는 인간의 시간을 비춘다. 견디기 어렵다는 이유로 주님을 향한 고백까지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밤은 마지막까지 깨어 있으라는 경계가 되지만, 이미 넘어졌다는 이유로 돌아갈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된다. 인내와 회개는 서로 다른 길처럼 보여도, 둘 다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붙드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 붙듦은 오늘의 삶에서 구체적인 모양을 얻는다. 재정과 건강, 관계의 어려움이 겹쳐 믿음이 흔들릴 때에도, 말씀 앞에서 내가 외면하는 진실을 살피고 기도 속에서 성령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대기보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까지 주님께 숨김없이 내어 놓는 것이다. 이러한 깨어 있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의 특권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놓지 않으려는 믿음의 선택이다.
베드로의 새벽은 자기 힘으로 지난밤을 지워 버린 사람의 아침이 아니다. 자신이 부인한 주님께 다시 사랑을 고백하고, 맡겨진 이들을 돌보도록 일어선 사람의 시작이다. 십자가의 은혜는 실패한 나를 다시 일으켜,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세운다. 그분의 물음 앞에서 오늘 나는, 나를 감추는 침묵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는 삶으로 대답하고 있는가.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