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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장,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의 뜻 | 장재형 목사

장재형목사

부당한 권력의 소식 앞에서 성경의 ‘복종하라’는 말이 무겁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잘못을 보면서도 침묵해야 하는지, 믿음을 지키려면 세상의 질서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마음이 갈라집니다. 장재형목사(미국 Olivet University 설립)의 로마서 13장 설교는 권세를 존중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주권에서 찾으며, 그 책임을 이웃 사랑으로 이어 갑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종은 시민의 책임을 다하게 하면서, 권력의 잘못도 사랑과 정의의 기준으로 분별하게 합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뜻

로마서 13장 1~7절에서 바울은 권세의 근원을 하나님께 둡니다. 이 말은 국가가 가진 힘의 크기보다 그 힘이 누구 아래 놓여 있는지를 먼저 보게 합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이며, 자기 뜻을 최종적인 기준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세라는 고백에는 그 권세 또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책임이 담깁니다.

장재형 목사는 통치자가 선을 칭찬하고 악을 제어해야 한다는 본문의 설명에 주목합니다. 권세의 정당한 역할은 공동체를 보호하고 선한 삶을 돕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부패와 억압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의한 현실을 살피고 잘못을 바로잡도록 요구하는 일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지키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동시에 제도의 결함을 보았다는 이유로 모든 질서를 무의미하게 여겨서도 곤란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제도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때로는 그 제도를 통해 보호받습니다. 설교가 바울을 보호한 로마 군인들의 역할을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협할 수도 있는 권력의 틈에서도 생명을 지키고 복음의 길을 여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는 믿음은 순종과 비판 모두의 동기를 살피게 합니다. 유리할 때에는 권세를 내세우다가 불편할 때에는 신앙을 핑계로 의무를 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권력을 향한 태도가 자기 이익에 따라 바뀐다면 하나님보다 나 자신이 판단의 중심에 놓이기 쉽습니다. 공동체에 필요한 선을 구하는 마음이 존중에도, 비판에도 일관되게 흐를 때 믿음의 기준은 선명해집니다.

두려움을 넘어 양심으로 감당하는 책임

바울은 권세를 대하는 이유를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양심에 연결합니다. 적발되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 몫을 다하겠다는 태도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보호와 제도를 누리는 사람인 동시에, 그 공동의 삶을 지탱할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세금과 시민의 의무를 성실히 감당하는 일에도 믿음의 내용이 담깁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말씀하신 대목도 같은 물음을 열어 줍니다(마태복음 22:21). 이 설교는 세상에서 누리는 것에 합당한 의무를 다하면서,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로 그 말씀을 읽습니다. 국가에 협력하는 행위가 하나님을 향한 궁극적인 충성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시민으로 살아가는 순간에도 우리 행동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오늘의 삶에 옮기면 책임의 범위는 더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내가 누리는 편리함을 유지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수고와 비용을 떠넘기지 않는 일, 공동의 약속을 자기 사정에 맞추어 가볍게 바꾸지 않는 일이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사회의 불공정을 말하면서 내 작은 편의에는 관대했던 태도도 돌아보게 됩니다. 양심을 따른다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선택에서도 이웃의 몫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질문은 나에게 유리한 자리에서도 계속됩니다. 내가 누리는 제도가 다른 이에게는 부담을 주고 있다면, 그 사정을 듣고 더 나은 방향을 함께 찾을 책임도 있습니다. 제도를 존중하는 사람은 제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도 묻게 됩니다. 이렇게 시민의 의무는 사람을 살피는 일과 이어지며, 세상 속에서 복음을 드러내는 삶의 한 부분이 됩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이 언제나 공정한 대우를 받는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권력의 본분과 실제 권력의 모습 사이에는 때로 아픈 간격이 생깁니다. 선을 행하고도 위협받는 현실에서 믿음이 붙드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내 안전을 완벽하게 확보할 수 없는 때에도 그분께 삶을 맡기며, 고난을 피하려고 선한 양심을 버리지 않는 담대함을 배워 갑니다.

사랑의 빚, 율법을 완성하는 은혜의 응답

로마서 13장 8~10절의 사랑의 빚은 이 책임을 더 깊은 근원으로 이끕니다. 장재형 목사는 그 근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서 찾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향한 섬김은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응답하는 삶입니다.

세금은 납부를 마치면 영수증을 받을 수 있지만, 사랑에는 모든 책임을 끝냈다는 영수증이 없습니다. 이는 평생 죄책감에 쫓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기에, 오늘 만나는 이웃에게도 건넬 사랑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의 빚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 살아가는 방향을 보여 줍니다. 사랑은 시민의 의무를 수행하는 태도에도 스며들어 그 의무를 이웃을 위한 섬김으로 깊게 합니다.

바울이 사랑을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사랑이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계명에는 이웃의 생명과 관계, 삶의 터전을 지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긴다면 그의 고통을 외면한 채 내 욕망만을 앞세울 수 없습니다. 사랑은 계명이 가리키는 삶을 실제 관계 속에서 드러냅니다.

그래서 사랑의 법은 감정이 따뜻했는지만 묻지 않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이용하지 않았는지, 말로는 존중하면서 행동으로는 그의 몫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게 합니다. 도움을 주는 순간에도 상대보다 우월해졌다고 여길 근거는 없습니다. 나 역시 먼저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기억이 섬김의 자세를 낮추고,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던 마음을 돌이키게 합니다.

사랑의 책임을 살피다 보면 자신의 무심함과 실패도 드러납니다. 그럴 때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는 일은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킬 힘을 줍니다. 상처를 준 말은 거두고, 미루었던 책임은 가능한 만큼 다시 맡으며, 받은 용서에 기대어 다음 선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부족함을 깨달은 순간에도 사랑을 배우는 걸음을 이어 갈 수 있습니다.

불의를 마주할 때에도 사랑의 법으로

이 사랑은 불의를 마주하는 태도에도 이어집니다. 억압받는 이웃의 말을 듣고, 잘못된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며,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일은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문제를 덮어 두어 잠시 평온을 얻는 데서 멈추면, 고통받는 사람의 현실은 그대로 남습니다. 사랑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별하고 그 사람 곁에서 감당할 책임을 찾게 합니다.

그렇기에 옳은 일을 구하는 목적과 그 일을 이루려는 방식도 함께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 사랑(마태복음 5:44)은 생각이 다른 사람까지 사랑의 책임 안에 두게 합니다. 정치적 입장이나 분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전체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입니다. 불의를 비판하면서도 증오와 폭력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 절제에는 십자가의 사랑을 따르려는 믿음이 담깁니다.

예수님께서 높아지려는 제자들에게 섬김을 가르치신 말씀(마태복음 20:26)은 이 책임의 자세를 드러냅니다. 누군가를 바꾸려 하기 전에 내가 맡을 수 있는 수고를 찾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의 짐을 나누고, 지역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살피는 일은 그 섬김이 구체화되는 자리입니다. 권세를 논하던 성경 묵상이 결국 내 손으로 누구를 섬길지 묻는 데까지 이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쉽게 지속되지 않습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깊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는 소망은 눈앞의 인정이나 성과만으로 섬김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도록 붙들어 줍니다. 아직 변화가 보이지 않는 때에도 할 수 있는 작은 봉사와 보호, 물질과 시간의 나눔을 이어 갈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에 무겁게 들리던 복종의 말씀은 이제 내 삶의 방향을 묻습니다. 맡은 의무를 성실히 감당하고, 잘못된 일에는 양심을 지키며, 그 모든 과정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 오늘의 선택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루를 돌아볼 때에는 내가 얼마나 옳았는지와 함께 누군가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었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나의 순종과 비판에는, 먼저 받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담겨 있을까요?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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